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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봉우 황운정 지사 생애 활동사항


계봉우 황운정 지사는 카자흐스탄에 안장이 되어있었으며 21일에 국내로 유해봉환을 하는 행사를 주관하였습니다. 또한 두 지사 의 생애 활동사항 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카자흐스탄 운구병 8명은 군악대의 장송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계봉우 지사와 황운정 지사의 유해와 영정을 들고 입장을 하였습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한국으로 향하는 공군2호기에 오르는 두 부부의 유해와 후손들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 행사장을 떠났습니다. 



계봉우 황운정 지사 생애 활동사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계봉우 지사는 1908년 동경 유학생 단체인 태극학회의 영흥지회에 들어가 진지사 등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며 계몽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신민회 운동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10년에는 나라를 잃은 뒤 북간도로 망명 하였으며 이동휘와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습니다. 



이후로 이동휘와 함께 고려공산당 창립하는것에 참여하였으며 이르쿠프크파와 치열한 반목관계에 있었으며 이르쿠프크 집단과 군권 투쟁으로 1921년 5월경에 체포되어 압송이 되었으며 12월경에 출옥하였으며 카자흐 크질오르다에서 만년을 보낸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서 황운정 지사는 1919년에 만세시위에 참가한뒤 1920년 중국 길림성 으로 망명을 한후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하여 1920-1922년까지 솔밭관한족공산당 행정부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20년 6월에는 일본군과 러시아 백위군에 맞서 싸웠으며 러시아공산당과 적군을 지지하였습니다. 


또한 항일 선전과 맑스주의 보급에 노력하기도 하였으며 우리동무군이라는 비정규 무장부대를 창설하여 일본군, 러시아 백위군, 중국인 마적부대들과 맞서 투쟁하였습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2005년에 공훈을 가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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